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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난(@r4sqt1n) - 리타 카니스카, 히메노 란/리타히메

허그-를 주세요!

※본편 이후의 시간대입니다.

    지쳤다. 리타 카니스카는 당장이라도 소리를 내지르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공무를 집행했다. 우충왕과의 전투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고, 각 국가가 다시금 안정궤도로 진입하고 나면 그 이후의 처리는 대개 리타의 몫이었다. 불평할 수도 없었다. 중립국이자 거대한 법정이기에, 곳칸의 업무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각 국가 내부에 있던 우충왕 세력의 내통자를 심판하고, 치큐 전체가 혼란해진 틈을 타 탈옥을 시도하던 죄수들을 다시금 투옥시키고, 또 원래 진행하던 기존 죄수들의 가석방 심사 및 관리까지 더불어서 진행하니, 피로함이 더욱 쌓여갔다. 덕분에 리타는 마지막 판결을 내릴 즈음엔 이미 머리 한 편에서 못훈을 그리고 있었다.

재판이라는 게, 전부 하루에 끝나면 참 좋으련만. 리타는 가능할 리 없는 소망을 제 머릿속에서 훑어냈다. 문득 밖을 바라보면, 해가 지고 있었다. 슬슬 정리할까. 다행히도 급한 안건은 전부 처리를 마친 참이었다. 오늘은 철야하지는 않겠군. 객관적 판단을 내리는 머리는 아직 맑았으나, 개인실을 향해 가는 리타의 걸음에는 피로감이 묻어났다.

그런 리타를 위한 선물이었을까. 개인실 문 앞에는 처음 보는 못훈 인형이 놓여 있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그건 「못훈과 함께」 애니메이션 새 시즌을 기념해서 발매된 시즌 한정 못훈~with 동물 친구들~에디션의 3번 옵션 제품인 순록 머리띠 못훈이었다. 분명 발매가 어제였던가. 일에 치인 덕분에, 리타도 아직 구하지 못한 종류였다. 평소였다면 누가 이런 걸 보냈는지부터 생각하겠지만─물론 제게 이렇게 앙증맞은 짓을 할 사람이 대략 둘 중 하나라는 걸 알고 있기는 하지만─리타는 그러기엔 너무 지쳐 있었다. 그저 제 눈앞에 새 못훈이 있다는 데에,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정신이 팔려 있었다. 못훈 인형 머리 위로 앙증맞은 뿔이 솟아 있는 모습에, 리타는 감격을 금치 못하……기 전에,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게 리타가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이성을 발휘하는 일이었다. 평소의 대법관의 모습을 가장하고, 주위에 인기척이 없는지를 세 번 정도 확인하고 나서야, 제게 배달된 못훈 인형을 소중히 들고 제 개인실로 들어섰다.

상대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다면, 굳이 신원을 드러내지 않고 행해지는 호의는 캐묻지 않는 편이 좋다. 리타는 그렇게 생각하는 주의였다. 다만, 지금의 상황은 이야기가 달랐다. 못훈이 점점 늘어났다. 심지어 커지기까지 했다. 분명 처음에 왔던 건 10cm가 조금 넘을법한 인형이었는데, 그 다음은 품에 쏙 들어오는 크기였다가, 이제는 끌어안았을 때 안정적인 수준의 크기가 되어 있었다. 리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히메노에게 연락해야겠군.”

기본적으로, 리타에게 그런 식으로 선물을 전해주는 사람은 상기했듯이 둘밖에 없다. 모르포냐, 혹은 히메노. 리타의 친우들은 대개 리타를 가만히 둘 수 없는 사람들뿐이니까. 그러나 이렇게 웬만한 사람들은 구하기 어려운 종류의 인형까지 대동할 수 있는 건 후자의 가능성뿐이었다. 히메노는 이쪽의 상황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멋대로 연락을 해오는 아가씨인 것처럼 굴어도, 근본적으로는 상냥한 사람이다. 물론 그 상냥함 역시도 상당히 그의 마음대로, 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만……. 리타는 며칠 사이에 제 방을 채운 새 못훈들을 바라보았다. 히메노는 제게 호의를 건네거나 다가서고 싶을 때 늘 못훈을 내세우고는 했다. 별로 히메노 본인에게서 오는 호의를 거절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쩐지 먼 길을 돌아오게 만드는 기분이고. 머릿속이 꼬여간다. 그래, 원래라면 이런 고민을 길게 하지도 않을 테다. 이미 히메노에게 연락해 따져 묻고, 이후의 답례를 생각했겠지. 하지만 리타에게는 그러기 어려운 이유가 있었다.

히메노에게, 고백을 받았다. 그리고 없던 일이 되었다. 리타는 곳칸의 왕이자 대법관으로, 중립국의 수장으로 살아왔다. 인간관계는 넓어지면 약점이 되고, 피로했다. 애초 그건 중립을 해치는 일이었다. 히메노도 그걸 알고 있으니 얘기하지 않을 요량이었겠지. 리타는 당시를 회상했다. 제게 좋아한다고 했던가. 평소처럼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발언이었을 텐데, 히메노는 찰나에 완전히 ‘저질렀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곧 그는 조금 무안한 낯을 하고서 미안하지만 못 들은 걸로 해주겠냐고 물었고, 리타가 할 수 있는 건, 고개를 끄덕이는 것 이외에는 없었다.

이후로는 당연하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리타가 아주 많이 바빴기 때문에. 다만 이렇게 된 이상은 연락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리타는 제게 고백했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된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붙여야 하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차라리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건 간편할 텐데. 정도를 모르고 꼬여가는 생각에 결국 리타는 초대형 못훈을 끌어안고 소리를 내질렀다. 리타답게, 그러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멀쩡한 낯으로 일어났지만.

그리고 수일이 더 지나서 지금. 리타는 미리 연락하지 않은 걸 후회하며 복도 끝에서 본인의 개인실과 대치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제 개인실 앞에 놓인─사실 그건 제 발로 서있는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거대한 못훈과 대치중이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마도 이샤바나의 실사 못훈 인형극을 할 때나 볼법한 크기의 ‘진짜 못훈’이, 리타의 개인실 앞에 놓여 있었다. 여차하면 정말 사람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크기였다. 그 찰나였다.

기우뚱.

못훈이 거대한 몸을 돌려 리타를 바라보았다. 생각 철회. 정말로 사람이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과부하가 올 것 같군. 리타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머리 한 편에서 히메노에게 기함하는 동시에, 다른 한 편에서는 저 못훈이 얼마나 부드럽고 포근할지를 상상하는 스스로를 향한 것이었다. 인정하자. 솔직히, 거대한 못훈은, 그 압도적인 크기만큼이나 귀여웠다. 리타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꽤나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리타가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 못훈은 조금씩 리타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안아달라는 듯, 혹은 안아주려는 듯 팔을 벌리고 뒤뚱거리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 온다. 리타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걸음을 옮겼다. 평소와 같이 보폭이 넓고 빠른 걸음은 ‘못훈’과 달리 경쾌했다. 거리를 좁히고, 그 몸을 끌어안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오히려 안겨 있는 ‘못훈’쪽이 당황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리타는 제 상상보다도 훨씬 익숙하고 포근한 털뭉치에 얼굴을 묻고, 숨을 내쉬고, 끌어안은 채로 등을 쓰다듬다…….

“잠깐, 리타?!”

“역시 히메노였군.”

그 상태 그대로, 목과 등 언저리에 있을 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못훈을 헤집는 건 썩 유쾌하지 않지만, 제 예상대로 안에 들어있을 히메노가 소스라치게 놀란 목소리로 화답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거대 못훈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형탈이라는 사실은 진작에 간파했으니, 그 안의 정체를 밝히는 집행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용건이 있었다면 연락을 해주는 편이 좋았을 텐데.”

“그러는 리타도, 나에게 아무 연락도 없었잖아? 일부러 몇 주나 공을 들여서 못훈을 보냈는데.”

다시금 기우뚱. 품 안의 못훈이 멀어지고─솔직히 이 대목에서 아쉽다고 생각한 건, 영원히 리타 혼자만의 비밀인 것으로 하기로 했다.─이내 히메노가 머리쪽 탈을 들어냈다. 인형탈에 들어간 채로 얼마나 자신을 기다린 건지, 답지 않게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용건이랄 건 없어요. 그냥, 리타가 요즘 바빠 보이니까 선물할 요량이었던 거였는데. 평소 같으면 답례 인사 정도는 먼저 해줬을 텐데, 그때를 계속 신경 쓰는 건지 나를 마주하려고도 하지 않는 게 괘씸해서.”

“전혀 해답이 되지 않는다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그래도, 이런 거추장스러운 걸 걸치고 온 덕분에 리타를 끌어안을 수 있었잖아? 나는 꽤 만족스러웠는걸.”

평소와 같은 낯으로 어깨를 으쓱이는 걸 보고 나면, 결국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지고─아니, 아닐지도 모른다. 멋대로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너머로, 히메노의 귀가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리타는, 문득 충동에 휩싸인다. 제 앞에서 평정심을 가장하는 그 모습을, 못훈이 아니라도, 끌어안아주고 싶을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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